하여 이들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단체의이름으로 삼은 <파스큘라(PASKYULA)>는 <염군사>보다 문학적 역량이 우위에 있고, 당시 문단에서의 영향력도 훨씬 컸다.
의 통합으로 이루어졌지만, 당시 새로운 창작경향을 내보이며 작품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도 참여하게 된다.
사람들>, <오매를 둔 아버지>, <민며느리>, <해후>, <채색무지개>, <고난을 뚫고>등이 있고 농촌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민촌>, <농부정도룡>, <쥐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기영은 대표작 <고향>을 1933년 여름 황주 성불사에 머물며 집필하기 시작, 같은 해 11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한다.
서화>와 장편 <고향>을 발표하고, 문학예술로서의 사상성을 부정하는 김동인, 이광수 등과 맹렬한 이론 투쟁을 전개하였다. 1946년에는 북한 문학상 최초의 장편소설 <땅>을 발표하여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회 경제적 변혁과 조선 농촌의 복잡하고도 거대한 발전을 그렸다. 북한에서는
소설문학은 전반적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주제의 다양화
(1) 불안의식의 표출
국민의 계몽을 외치던 시기를 거치면서 지식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에 비하여 상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었다. 1930년대는 이러한 극심한 취직난이 결과적
소설 <인간수업>을 내놓았으며, 장편소설 <어머니>, <신개지> 등에 이어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봄>을 내놓고 있다. 194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 건설을 주도하며 월북했고, 1984년 병으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 <농부 정도룡>․<종이 뜨는 사람들>․<홍수> 등과 중편소설 <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