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탈고를 보지 못한 채, 마흔 여덟 살 되던 섣달 그믐날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구체적인 삶의 행적이나 소설 창작의 전 과정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남긴 《홍루몽》은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이 되어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 《홍루몽》의 개요
1) 작품개요
청조에 대한 원한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에 이른다.
그것은 청나라에 강희제(康熙帝 1662∼1722)와 건륭제(乾隆帝 1736∼1795) 같은 명군이 나와 적극적인 학술 부흥책을 쓴데 힘입는다. 강희황제 때에는 한족의 유로들을 동원하여 공전의 대 문화 사업을 벌였으니, 『명사』의 편찬을 비롯하여 『패문운
청대에서 최고로 강성했던 시기이자 쇠퇴의 기점으로, 각종 사회 모순은 날로 첨예해졌으며 표면적인 강성함에 허약함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중국은 세계 선진국 대열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었다.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이 중국의 빗장을 연 후 외국의 열강이 잇달아 침략하였고 전쟁이 끊이지
청나라가 군사대국의 한계를 벗어나 문화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노론의 일부에서는 '북벌론'(北伐論) 대신 청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이 제기되었다. 예컨대 북학파의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오랑캐족[胡族]이 중국을 빼앗았다는 것만을 알 지, 빼앗긴 것이 곧 중국
과거의 반항적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에 옮겨보려했던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그가 안의현감 생활을 하면서 쓴 열하일기와 면천군수 시절에 남긴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등은 연암의 현실 개혁사상을 이론적으로 펼쳐 보인 대표적인 저서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