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다.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우리의 언어, 습속, 정신 등, 우리 민족의 모든 것이 자연스레 내장된 그릇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조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자 하며, 나아가 우리들 속에서 잊혀져가는 시조를 대중화 할 방안을 찾고자 한다.
2. 시조 개관
시조는 고려 후기 신흥 사대
문화 및 문학 운동을 주장하였다. 이승하, 위의 책 p. 62.
염군사는 1922년 9월에 발족한 프로문학 조직이다. 염군사 동인들은 그들의 문학 활동 일환으로 곧 <<염군(焰群)>>발간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는 이적효, <지새는 새벽에 어린애 죽었어요>, 이호, <가로를 넘어서>, 박세영, <양자강변에서> 등이 포
시조작가가 당대의 쟁쟁한 성리학의 석학들이었다는 사실은 곧 시조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그 내용적인 형성요건을 제시하는 데에 성리학이 중대한 의의를 가졌음을 암시한다. 즉, 신라 이후로 우리민족의 생활과 민족문화의 뒷받침이 되어온 불교가 고려 말기에 들어서서는 누적된 폐단으로 말미암아
時調다. 時調가 朝鮮에 잇서서 唯一한 성립문학成立文學임을 생각할 때에 時調에 對한 우리의 親愛는 一段의 深厚를 더함이 잇지 아니치 못한다.
최남선, 「조선국민문학으로의 시조」,《조선문단》제16호(1926.5), 4쪽
그의 시조집 <백팔번뇌>는 인쇄 문화가 시작된 지 최초로 출간된 개인 창작 시조
時調
사대부 지식인들은 시조문학을 꽃피우며 주도해 나간 중심 향유층이다. 이들은 고려 후기부터 유가적 세계관을 經世의 이념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해 조선의 건국을 주도한 층으로서, 조선왕조 역사 내내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를 좌우해 온 지배세력이다. 이러한 만큼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