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언어 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지역의 사람에게 제시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특한 회화양식, 즉 ‘한국화가 무엇이다’라는 그 실체를 논리적․미학적으로 더구나 구체적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창조를 통해서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식, 즉 고려시대 불화나 조선시대 자성적인 민화의 색감을 재정리 해 보려는 의식이 팽창함에 따라 탈 일본화주의 주장과 한국적 화풍으로 토착화하기 위한 실험의식이 팽배하였다. 거기에 19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과 1980년대 컬러문화 시대로 돌입하면서 한국화에 있어 채색화가 넓게 확산되었다.
한국화를 회화라는 의식에까지 끌어올렸는데, 여러 가지 실험을 전개한 현대적 경향과의 대립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 당시에는 김기창, 천경자, 박래현, 서세옥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서양화는 1930~40년대에 일본을 통하여 새로운 미술운동이 소개되었다. 고회동을 비롯하여 김관호, 나혜석, 히종
작가들에게 경제적인 안정과 사회적 보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전위 작가를 자처하던 상당수의 미술인들마저도 이 사업에 가담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미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순수추상’의 화가들이 자신의 조형양식을 바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