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당시의 참혹한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하면서도 ‘혹시 빨갱이로 몰릴까봐’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학살은 공포를 낳았고 다시 사회적 소통의 단절로 이어진 것이다.
Ⅱ역사교육을 통한 재 개념화
1. 내용구성의 원리
역사교육을 통해 민간인학살을 재개념화하기 위한 두 가지 원리는
역사교육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은 1992년과 1993년 2차례 진상조사결과 '일본군이 관여했다'라는 사실만 인정할 뿐 배상과 관련하여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4. 유대인학살
- 유대인 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전멸
민간인학살 사건과 관련된 곳이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광주민간인학살 사건은 전두환 시기에 발생했으니 약 40년 전이고, 제주도 민간인학살은 대한민국 건국 초에 발생한 것이니 70년도 더 된 일이다. 게다가 지역도 다르고, 피해 규모도 제주도가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기에 다른 사건으로 보일
민간인학살사건 발생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학살은 전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발생했는데, 초기 한국 경찰과 미군에 의해 일어난 대표적인 민간인학살 사례가 보도연맹사건과 노근리 사건이다. 보도연맹사건은 남한 경찰이 주로 평택 이남에 있던 보도연맹위원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학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2005년:132).
본론
1, 학살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진실학살이란 ‘말살’ 혹은 ‘절명’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질서와 문화의 창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집단들은 기존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