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회의 형성
Ⅰ. 통일조국과 민족교회 형성과정
1. 민족교회운동의 역사적 근원
결론부터 제시한다면, 통일조국에 있어서의 교회는 ‘외래종교로서의 기독교’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통일조국에 있어서의 교회는 마땅히 자생, 자주하는 주체적 전통을 이어 받은 ‘민족교회’라야 한다.
운동 제기 동기에서의 선정 요인 중 도덕적 퇴책에 대한 저항이란 각도에서 심각한 문제로 시종 외쳐지고, 또 세계에 통지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1940년까지의 한국교회의 사회운동은 사회봉사, 사회사업, 사회개선, 그리고 절실한 당신의 민족적 사활의 문제로 등장한 농촌운동의 형태로 나타났
기독교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제에 협조하고 신사참배에 참가하였으며 교회내의 민족운동을 홀대하였으며 해방 후 반공 기독교로서 분단한반도의 냉전체제에 대한 옹호적인 노선을 걸었고, 70년대에는 유신독재에 협력하여 민주화의 대세를 거스르기도 하였다. 또한 지나
교회를 찾았다. 선교사들도 초기에는 민족과 민중을 중시하는 외연(인간화) 중심의 선교에 주력한다.
1903년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원산에서 시작된 내적체험(신앙적 내연) 운동은 1907년을 정점으로 기독교 신앙이 내적 체험(복음화) 위주로 전환되면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내연(복음화) 중심
한국기독교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작업이다.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평양 대부흥 운동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이 장에서는 기독교 역사인식방법들 가운데 선교식민사관, 민족교회사관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의 비판과 한계를 넘어 민중사관에 대하여 살펴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