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영역에서의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전부터, 70년대에 유러콤은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을 폐기하면서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길'을 표방한 바 있으며, 이 문제틀 속에 보비오가 놓여있고, 또한 그 기저에는 카우츠키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사회주의 진영내에서 많은 모색이 있었다. 소련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에서 시작하여, 소련식 사회주의는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다까지. 그러나 그 누구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변화하여야 한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 못하다. 오직 자본주의적 쾌락에 자신을 내 던지는 수많은 사람
국가에서 권위주의정권이 수립되었다가 몰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다행히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물결과 함께 아시아와 중남미에 있는 많은 국가에서 서서히 민주주의의 정착 및 제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민주화 경향은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실패와 몰락으로 더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혁명의 문제를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신봉'했고, 따라서 당시의 봉건-절대왕정의 전제적 지배체제의 타도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를 사회주의혁명으로 '성장전화'시켜 러시아에서 뒤늦게
할 수 있는 그람시에 대한 학습을 한달 정도라도 진행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그람시학습을 하게되었던 것이다. 그람시학습에서 교재로 쓰인 것들은 다
음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람시의 {옥중수고--정치편}중 1장 [현대의 군주]와 2장 [국가와 시민
사회],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이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