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 이론을 기대기에는 인종적으로 혼성화 되어있는 상태이며 동서양의 가치를 식민자와 피식민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뒤따른다.
식민주의가 종식된 오늘날, 탈식민주의시대는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정치적, 사회적 그 어떤 면에서도 혼종성을 띠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 언어의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살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하지만 그들의 아들 재미교포 2세 헨리는 미국의 명문대를 나와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고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등 미국사회에 뿌리는 잘 내린 사람으로 보여 졌다.
제시하고 있다. 즉 유일한 ‘보편자’ 서양에 대한 막무가내식 따라잡기인 ‘결핍’으로서의 정체성 속에 갇히기 보다는 서양을 제대로 알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개성’의 정체성, 즉 주변이자 경계점인 자신이 선 자리를 창조적 지점으로 삼아서 문화적 자생력을 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어쩌면 왜 사는가?라는 철학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이 될 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학문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학문을 하고 살아가고 있고, 남들이 보기에도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있을 것이다.
대한다. 그는 그 용어를 식민 전/후의 시기적 구분을 위한 용어가 아니라, “식민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든 문화를 포괄하는 통칭적 개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포스트식민주의가 전통적인 반(反)식민 저항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