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인들의 대부분은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하층민 출신이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주요 몇몇 지도층 인사들도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가이오의 집에 상당한 교인들이 모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린도 도시를 중심하여 여러 다른 가정 교회가 있었다. 바울이 이들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 호
자신들이 무엇을 가르치는 지도 이해하지 못했고(1:7), 양심을 거역하며(1:19-20),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았다(4:1). 그들은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등 믿음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났다(6:20). 이에 대하여 바울은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믿음과 나 역시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믿음이 빠져있으면 산제물이 될수 없다. 조갑진, [로마서], (서울 : 도서출판 바울, 2004 ), 174-175
‘영적예배’헬라어 (로기켄 라트레이안) 에서 ‘라트레이안 latreivan
하나님의 열심히 뛰어났다.그러나 다메섹 회심이전에 예수를 하나님의 저주받은자로 오해하여 예수 믿는 교회를 핍박하였다.바울은 안디옥교회를 선교의 중심지로 삼아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하여 소아시아의 에베소 마게도냐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헬라(아가야)의 고린도와 아덴등을 복음으로 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멸시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사도직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이요, 따라서 그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본격적으로 그의 사도직을 변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곧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