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典籍)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띤다.
우리는 내물왕과 박제상에 관한 일화를 두 사료를 통해 분석하고 비교해 보면서 어느 것이 더 역사적 타당성
삼국사기]의 박제상전을 주목해 볼 필요가 했다. 박제상전의 내용은 신라의 제상이었던 박제상이 왜에 볼모로 잡혀간 미사흔을 귀환시키기 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시 왜의 신라에 대한 경계와 아신왕의 태자 진지가 볼모로 온 것을 보고 왜와 백제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광개토대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 제2
아달라이사금
아달라이사금이 즉위하니, (이는) 일성왕의 장자다. 키가 7척이요, 코가 크고 상이 기이하였다. 어머니는 박씨, 지소례왕의 딸이요, 비는 박씨, 내례부인이니 (이는) 지마왕의 딸이다.
원년 3월에 계원으로 이찬을 삼아 군국정사를 맡겼다.
2년 정월에 (
신라와 발해
1.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그를 도와주던 당나라는 고구려 땅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신라는 당나라를 치려고 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당나라는 옛 백제와 손을 잡고 신라를 치려 했으나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 연합군에게 계속 지기만 당나라는 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