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인류의 아주 오래된 ‘신화’에 기대고 있다), 그것을 새로운 느낌으로 현재화시켜내는 힘. 그것은 연출력과 연기력, 그중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박찬욱은 체질적으로 ‘체험’이라기보다는 ‘교양’에 자신의 영화적 뿌리를 대고 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우진 이 오대수에게 “말이 너무 많아요”라고 했듯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 <올드보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이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나는 <올드보이>속에 나타나는 남성 중심적인 이데올로기, 즉 파시즘과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복수의 방식에 관하여-
한다. 그리고 자신은 사이보그이기 때문에 전기를 충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식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식사를 하지 않아 배터리가 충분치 않아 힘들어 한다. 그래서 충전만 되면 변신해서 그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가지 망상에 사로잡혀 그것이 현실이라고
영화를 끝낸 신인의 모습이 아니다. 박찬욱감독은 공언대로 전작들과 명백히 다른 길을 걸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두 배가 넘는 9백여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 콘티 북이 증명하듯 여유를 주지 않고 관객을 몰아붙이는 리드미컬한 시청각 이미지는 <올드보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피부로 체감할
올드보이는 제목만으로도 영화의 퍼즐을 맞추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전거리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받는 가장 대표적인 느낌으로는 복수의 감정을 용암처럼 분출시킨다는 것이다. 그 폭발의 정도가 너무 세서 보고 나면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서 힘이 빠질 지경이다.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