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가 있으며, 또 논적으로는 육상산이 있어 이들과 상호 절차탁마하면서 주자의 학문은 비약적으로 발전 심화하여 중국사상사상 공전의 사변철학과 실천윤리의 체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71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약 9년 정도만 현직에 근
(1) 서론
서원의 기원은 중국 당(618~907) 말기부터 찾을 수 있지만 정제화(定制化)된 것은 송(960∼1279)에 들어와서이며, 특히 주자(1130~1200)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열고 도학연마의 도장으로 보급한 이래 남송·원·명(1368∼1644)을 거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학과 서원은 같이 흥
동시에, 나아가서는 종교의 근본원리가 되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된다. 타일러 에 의하면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령 잠자고 있는 동안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교육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서당이다. 서당에서는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천자문』과 같은 교재를 통해 기초적인 문자교육을 실시했으며, 나아가서는『동몽선습』,『사략』,『통감』,『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등 유학의 기본 교재나 경
Ⅰ. 서론
봉건적 계급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생긴 조선조 선비들의 후예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산업사회 또는 정보사회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한국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현대의 한국인 가운데서 조선조 선비들과 처지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찾는다면 ‘지식인 계층’이라고 대답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