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신화가 있었고 이를 통해 지배자를 신격화시켰다. 그 결과 건국자를 신격화하는 단계에서 사실적인 기록, 즉 고려의 왕건이나 조선의 이성계에 해당하는 기록 부분이 없어 2차 기록 단계였던 삼국사기 편찬 시에 신화를 넣었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삼국의 신화 중에서도 특히 백제
풍납토성, 그리고 춘궁리 일대를 포함한 이성산성,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추정 도읍지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은 위례성이라고 하는 그 어원에 대해서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2. 위례성의 어원
백제의 왕성 이름인 ‘위례(慰禮)’의 원의는 ‘우리’, 즉 담장
. 이처럼 천연의 지리적 이 점은 얻기 어려운 지세로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아뢰었다.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신의 보좌를 받으며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니 그 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이
, 풍납토성은 어떠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서울특별시의 대규모 성장과 함께 급속한 개발의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1997년 선문대학교 李亨求가 풍납토성 실측조사 도중 토성 내부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백제토기 등 유물을 발견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한 것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선후관계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일부 논자들의 주장처럼 결코 풍납토성의 축조시점이 몽촌토성에 비해 이르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고학 자료상으로는 오히려 몽촌토성이 빠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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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성곽(성)의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