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베를린다다이스트들의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혼란스런 정치사회 상황 속에서 미학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예술은 무의미한 것이며,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혁명의 도구로서 그 형식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베를린다다이스트들의 태도는 정치, 사회 참여 입장으로 변화되어 갔
정치적 측면은 지나치게 부차적이 된다고 말한다. [제레미 블랙 저 / 한정석 역,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서울: 이가서), 2003.]
에 대한 강조로 인해 강력한 군사력과 위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군국주의는 살아남기 위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
다다이스트들의 의도는 그들과 정반대.
- 다다이스트들은 이성과 논리가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불러 일으켰으며, 유일한 구원의 길은 정치적 무정부상태, 본연의 감정, 직관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등에 있다고 생각. 그 발단 대단히 부정적이고 비관적.
- 취리히 다다는 문학상의 선언으로 시작됨.
활용되었다. 1919년경 미술 영역에서 서구 모더니스트 아방가르드들은 몽타주를 활용하여 변화된 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예술기법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하였고, 베를린다다이스트들을 비롯한 여러 아방가르드 그룹은 입체파의 콜라주로부터 이어받은 특질들은 포토몽타주 형식으로 선보였다.
베를린에서 공화국이 선포되고 이틀 뒤에 공화국 대표들이 연합군의 정전 협의안을 받아들인 후 합스부르크 제국 역시 붕괴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세프는 망명하였으며 헝가리와 새로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빈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다. 빈에서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탄생하여 독일과 합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