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혼란하고 많은 사람들의 원망과 소망이 넘쳐나는 때이기 때문이라고 부연 머리로 생각했다. 불전을 쓸 때, 불교 내부에서 쓴 책들은 신화와 과장 등을 통해 부처님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부처님의 일생을 돌아보거나, 부처님의 사상을 설명하려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해 간다면, 불교는 그것을 배격하고 정신적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시대적 흐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만 한다. 이와 같이 세속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회의 제반분야는
사회·역사적 삶을 나름대로 담아내는 문화적 용기(用器)가 되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제도종교로는 유교나 불교 등의 동양 고전종교와 천주교나 개신교 등의 서구기독교를 들 수 있고, 신종교로는 19세기 중엽 이후 생겨난 수많은 한국 자생종교가 있다. 또한 아직도 민간신앙이나 전통무속
불교 수용 정책을 강력히 관철시킬 수 있었고 그리하여 부족합의제를 지향하던 귀족층의 반대를 누르고 불교를 공인하고 중앙 집권적인 왕권 전제 통치를 강화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왕실에서는 지방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신장하기 위하여 부족 연맹체 사회의 지배 이념이었던 재래 신앙을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강봉룡·서의식,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솔, 2002.
백월산白月山 동남쪽 3,000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仙川村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살았다. 한 사람은 노힐부득이고, …한 사람은 달달박박이라 했다. …박박이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