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만주파 또는 88여단파 또는 빨치산파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김정기, 북한정권의 수립과정 및 향후 전망, (원광대통일문제논집 18, 1998)
Ⅲ. 제1차 권력투쟁기
1. 김일성의 등장
해방 후 남북한의 지도자였던 이승만과 김일성 양인이 아주 비슷한 식으로, 망명했다가 조국 땅에 돌아온
중심으로 관리적 측면은 없었다. 이는 북한군의 규모가 커진 후 당․군관계가 성립됐기 때문에 인민군의 기본적인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관리>제도는 설치가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후 숙청 등의 권력투쟁으로 인민군에 대한 당의 실질적인 지배는 강화됐다. 이후 <인민군당위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 부르주아계급의 박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선봉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격려한다. 트로츠키가 적으로 모는 집단은 부르주아로 통칭되지만 자본가, 지주계급, 기업가, 은행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출신성분이나 직업을 기준으로 구체화된
중심의 중화학 투자는 결국 파행적인 산업구조를 만들었다.
- 정경유착: 경제개발이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짐으로써 기업들은 권력과 연계를 맺어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어내고자 하였다. 독재권력인 박정희 정부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재벌이 불법공생관계를 형성한 것이
, 예기치 못했던 신군부 세력의 등장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근원적 이유가 국가안보의 위협을 구실로 한 권력구조에 있으며, 그 근원은 분단체제에 있기 때문에 분단의 극복, 곧 통일은 진정한 민주화의 길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ibid,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