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군정에 의하여 동포들에게 거창하게 소개되었고, 1946년 2월 김일성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의장으로서 그리고 이승만은 남조선 대한민국 대표민주의원 의장으로서 양인은 북한과 남한의 지도자로 각각 지명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김일성은 그의 지지자들에 의하여 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50년 가까이 절대독재자로 군림하였던 김일성의 인성과 이념적 성향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소년 시절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져 유소년 시절에 대해 소개를 하겠다. 위에서도 말하였지만 김일성의 출생시 이름은 김성주 이다. 그의 가
소련 중심의 공산국가 창설을 위해 서울에 대다수의 공산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소련의 정책을 배경으로 공산당의 남북분립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만한 인물을 등용했는데, 그것이 중국공산당 밑에 조선공작단을 만들어 귀국한 김일성 등의 빨치산 그룹이었다.
- 김일성은 평양의 소련군
해방후 북한정권의 수립과정은 ‘김일성’이라는 한 개인의 발자취로와 뗄래야뗄수가 없으며, 남한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소련의 계획에 의한 과정이었음을 알리고 싶었다.
해방 전 김일성의 활동
[김일성에게 해방후 권력상승에 도움을 준 2가지 사실들..]
36년 7월 동북항일연군 제 1로
총정치국의 성격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행정간부부의 지도를 받는 군 총정치국은 사실상 군대조직이 아닌 로동당 산하의 정치조직이다. 북한군 총정치국은 군대 내에서 정치, 사상의 지도권을, 인민무력부는 군정권을, 총참모부는 군령권을 가진다. 군총정치국은 총참모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