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파들이 대부분 연해주 출신인지라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화에는 낯설었다는 것을 『고려인 이야기』의 많은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항목이 그러한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히만은 여기(주: 나리마노브 정찰학교)서 주로 조선경제와 지리, 정치제도, 지역별 주민
후일 권력투쟁에서 각각의 축으로 발전하였으며,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북한의 정치과정의 특징인 김일성 중심의 유일지도체계 확립과정에서 주요한 참여자로 기능하였다.
1. 국내파, 갑산파, 연안파
먼저 국내파는 일제하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 중 대표적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혁명투쟁의 뿌리와 전통을 항일 무장혁명투쟁기에서 찾음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북안으로서는 위기상황에 당면하여 가장 강역하고도 효과적인 대중운동 형태가 바로 <고난의 행군>이라 하겠다. 북한은 “우리의 붉은기 사상은 본질에 있어서 혁명의 령도자에 대한 절
숙청 한반도가 日本으로부터 해방됐을 때 金日成이 北韓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蘇聯점령군의 지원과 한반도 분단이라는 두 가지 결정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日本 토벌대의 유격대 궤멸작전에 밀려 蘇聯으로 탈출했다가 蘇聯 점령군과 함께 平壤으로 돌아온 金日成은 蘇聯점령군과
본인, 친일지주들의 재산을 친일경력을 가진 보수적인 인사들에게 맡김으로써 경제를 더욱 정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서 일관하는 미군정의 기본방침은 첫째, 한국을 독립국이 아닌 점령대상지인 일본제국의 일부로 보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 미국은 한국점령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