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 권력투쟁에서 각각의 축으로 발전하였으며,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북한의 정치과정의 특징인 김일성 중심의 유일지도체계 확립과정에서 주요한 참여자로 기능하였다.
1. 국내파, 갑산파, 연안파
먼저 국내파는 일제하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 중 대표적
숙청됐지만, 소련파와 연안파의 인사들은 아직 당내에 포진하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김일성의 노선에 반기를 들다 ’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결정적으로 반김일성 운동에 나서는데, 오히려 김일성파에게 역공을 당하면서 숙청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북한 역사에서 ‘8
Ⅱ. 소련파에 대한 정의
이종석(1989)은 소련파에 대한 정의를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소련군민정부의 통역, 행정 요원으로 입북한소련계 한인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 이야기』에 등장한 80명의 소련파 인물들은 이러한 정의보다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이 교회장로였고, 김일성의 어머니가 어린 그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머니가계도 인텔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아버지 직업과 어머니의 생활에 비추어 김일성이 어린 시절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라는 추측
북한은 1953년 8월 휴전 성립 직후 열린 당 중앙위원회 6차 전원회의에서 전후 복구를 위한 토의에서 중공업 중심의 전후복구건설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1956년 8월 당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자 내각 부수상 최창익, 내각 부수상 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이 반(反)김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