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의 관련 속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의 한계점을 찾는다는 인식으로 약소국으로서의 북한의 입지를 강조하는 측면으로 연구해 나갈 것이다. 따라서 기존 자료에서 외재적인 연구방법보다는 내재적인 연구방법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연구할 것이다.
관계는 급진전 하게 되고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의 국제적 입지는 위축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덩사오핑이 노선투쟁을 종결하고 더욱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1992년 10월 한•중수교가 이루어진다. 중국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서 북한은 “제국주의에 굴복한 일부 혁명의 변절
정책이 실시되었다. 작가들은 국가의 탄압정책에 대응하여 지하조직을 결성, 반체제운동을 하며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서방세계로 추방당하기도 하였다.
80년대 후반에 와서 글라스노스트 등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활동의 자유가 주어졌으나 경제적으로는 체제변
북한 그리고 북한을 위시한 사회주의영향권에 속하여 있던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대륙방향을 향한 민족발전의 전략을 고려해야하는 한국이 그 주요 구성원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경험과 여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연 유라시아는 하나의 의미있는 공동체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
중국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단순한 수치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은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현시대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물론 북한과 쿠바 등의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있으나 경제력이 전혀 없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 북한, 쿠바와는 다르게 여전히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