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환은 분명히 간파하고 있었다. 훗날 번안 작업에서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원칙을 밝히는 다음의 글에서 그 사실은 확연히 드러난다.
내가 메이지 문호 오자키고요의 원작의 곤지키야샤를 『장한몽』이란 이름으로 번안하여 낸 것이 기미년이었으니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그 사이를 흘렀다. 그
과정을 거쳐《無情》등 근대적인 소설로 지향하던 중간 시기의 1913년대에 독자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모았고, 그 후에도 갖가지 대중매체를 통하여 폭넓게 전파되어서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어린아이들까지 널리 알고 있었을 만큼 유명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한 현상은 3·1운동 때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다. 동경 유학생이 2·8독립선언을 하는 마당인데도 경도 유학생인 염상섭은 그 낌새마저 알지 못했으며, 3월 19일에야 대판에 가서 독립선언서를 뿌릴 정도였던 것이다. 경도의 또 다른 측면은 정규 일본 중학이었다는 점이다. 염상
Ⅰ. 북한문학(북한의 문학)
남북한 분단 이후의 북한문학은 1967년 ‘조선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대회’를 분기점으로 그 전후의 시기가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분기점을 구획하는 개념은 주체사상과 주체사관에 바탕을 둔 주체문학이다.
1967년 이전 시기의 북한문학은 북한 역사학의 발전 과정
김동인은 많은 작품을 통해 대동강과 평양의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분석을 통해 김동인에게 있어 대동강은 단순히 향수의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동강을 통한 명상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 외에도 대동강의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