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렇게 양가적인 면모를 보이는《장한몽》의 분석을 통해 여러모로 과도기적이었던 191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추적해보고,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작품개괄
〈이수일과 심순애〉로 더 널리 알려진 《장한몽》(1913년)은 일본 작가 오자키
장한몽』이란 이름으로 번안하여 낸 것이 기미년이었으니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그 사이를 흘렀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 살이다. 지금 같으면 20세만 되어도 조선청년도 선배의 창작과 번역을 통하여 소설과 시 등 문예적 교양을 쉽사리 얻어가질 수 있었지마는 24,5년 전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에는 한
3-2. 1910년대의 대중소설
조선시대에는 대중소설 대신 통속소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유교 경전이나 철학, 역사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우리말로 된 이야기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흥미에서 오는 대중소설의 감동적 효과를 인식하고 있어 근대 대중소설과도 일정부분 상통함을 알 수
장한몽』과 『금색야차』 두 작품을 비교·분석하고, 이를 통해 메이지 30년의 일본과 식민지 초기 조선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두 작품을 둘러싼 외적 상황들을 비교하며 작가인 조중환과 오자키 고요의 일생을 조망해볼 것이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신파극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점에 착안
야차)으로 표현하고 있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작가는 근대화가 가져오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이 작품에 담고 있다. 곤지키야샤는 우선 신문연재소설로 발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후 신파극(정확히는 新派의狂言), 영화등의 미디어로 퍼져나갔으며, 장한몽도 신문연재소설로 발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