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의 세력이 강화되어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정국이 되었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로 한번도 정복왕조가 들어서지 않아 귀족세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에 국왕과 재상에게 눌려 오던 사림들이 투쟁의 대상을 잃고 스스로 분열하여 당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Ⅱ. 조선 당쟁(붕당정치, 사림정치)의 정
사림파는 훈구파라는 강력한 상대세력이 있을 때는 단결되었다. 그러나 선조조에 훈구세력이 무너지고 사림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자 사림이 자체 분열하여 붕당이 생기고 붕당간에 당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므로 당쟁은 사림정치의 부산물로 보아야 한다. 당쟁이 유독 조선후기에만 있었던 것도 그러한
Ⅰ. 머리말
16세기의 정치변동은 사림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주도권을 장악해가는 과정 곧 사림정치의 형성과정이었다. 조선은 이들 사림세력이 등장하면서 성리학적 지배이념이 본격적으로 백성들에게 영향이 미치게 되었으며 이들에 의한 정치를 사림정치라 한다. 따라서 사림정치를
사림세력이 사화를 거치면서 훈구세력을 대체하여 주도하게 되는 시기이며, 따라서 중기의 시작은 사림세력의 형성으로부터 찾아야할 것이다.
조선중기의 정치형태는 초기에는 일본어용사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당쟁론(黨爭論)’의 관점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당쟁론을 비판하면서 ‘붕당정치
Ⅱ. 훈구와 사림에 대한 인식
1. 당파성론에 따른 훈구․사림의 이해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인식
-한민족의 역사를 분열과 정쟁만 일삼아온 혼란한 역사로 규정
-훈구․사림세력을 무능한 정치세력으로 인식
-사화를 무능한 정치세력의 분열과 대립이라는 부정적 측면에서 주목
-영향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