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은 반만년 역사를 이어 오는 과정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독자의 민족문화를 유지·발전시켜 왔다. 이는 그동안 한민족이 반만년의 역사 속에 민족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외래사상을 한국화하는 데 성공한 것을 의미한다.
동학사상의 출현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서 한국 민족주의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개화사상과 위정척사사상도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대두한 점에서 동학사상과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근대적 사회개혁과
정치적 민족주의’는 미약하고 ‘정념적 민족주의’만 강했다. 이러한 점들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동학민족주의의 정치사상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학문의 정립과 참교육을 통해 민족의 정치발전과 평화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그러하다. 민족주의가 많은 이데올로기와
1) 19세기의 사회상
(1) 정치적 상황
정치적으로 가장 문란하였던 것은 인사행정이었다. 과거제도의 경우를 보면 문벌 ․ 당쟁 ․ 매관매직에 좌우되는 등 관직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무계획적으로 허다한 명목을 붙여 과거를 시행하였다. 즉 과다한 관리후보자를 선출함으로써 당쟁을 유발하였
정치적으로는 청이 우세한 가운데 경제적 침략을 둘러싼 청 일의 각축전 또한 치열하였다. 특히 일본은 청이 임오군란 이후 ꡐ수륙무역장정ꡑ 을 통해 얻은 특권 - 한성에서의 開市 및 內地에서의 行商權 - 을 동일하게 요구하면서 면직물, 견직물, 도자기 등을 농촌사회 깊숙이까지 침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