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 《게송잡저(偈頌雜著)》 《제승법수(諸乘法數)》 등의 저서가 있다.
<삼국유사>
고려 충렬왕 때의 명승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歷史書). 5권 2책. 인
삼국유사』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민족주의 사학은 한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되는데, 이는 식민사학의 부정에서 연구가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타자’로서 조선 신화학과 역사를 접한 일본처럼, 민족주의 사학에선 마찬
. 대사는 본래 서울을 좋아하지 않은데다가 또한 노모를 봉양하고자 하여 간곡히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284년 노모가 죽은후 인각사에 주재하였는데,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284년에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연 뒤 1289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불교 대중화는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의 대세를 이루었고, 의상 도 그 흐름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각 각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성불했던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강봉룡·서의식,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솔, 2002.
백월산白
신라 왕조 기사와 백제·후백제 및 가락국에 관한 약간의 유사 등 25편을 다루고 있다. <흥법>편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전래의 유래와 고승들에 관한 행적을 서술한 7편의 글을, 다음의 <탑상>편에는 사기와 탑·불상 등에 얽힌 승전 및 사탑의 유래에 관한 기록을 30편에 나누어 각각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