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백범의 생애는 동학농민운동기, 치하포 의거, 교육운동과 수감기, 상해 임시정부기, 한인애국단 활동기, 피난, 유랑과 중경임시정부기, 귀국과 정치활동기 총 7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사건에 속한 시간과 비중은 각기 다르지만 백범의 일생을 뒤바꿔 놓은 사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분
: 1920년대 중반 이후의 독립운동과 8.15해방 이후 신국가건설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적 이념은 다양하였지만, 학계에서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독립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형태를 보였기에 ‘민족주의 vs 사회주의’가 아닌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의 구도로 설
상해의 독립운동세력과 연결되어 임시정부의 수립과 운영을 모색해 갔다.
상해에서는 3 ․ 1운동 직후 국내의 동향에 주목하면서 임시정부의 수립을 추진해 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국내의 의사를 존중하고 있었던 점이다. 상해의 인사들 은 임시정부가 해외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동
한인들의 기반이 별로 없는 상해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외 독립운동을 총괄한다는 애초의 목표를 원만히 수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919년 11월 독립전쟁론자로 평가되는 이동휘가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취임하고, 또한 1919년 후반과 이듬해 초까지 진행된 ‘일본의 시베리아 간섭출병
상해는 각국의 혁명가들이 망명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만주, 노령 등지에서 추방된 한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새로운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아래 국내의 3ㆍ1운동이 촉진제가 되어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었던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