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년 Valerius가 사망함으로 아프리카 교구전체에 어거스틴이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도나티스와 논쟁. 펠라기우스와 논쟁 - 하나님의 은총, 죄, 성도의 문제.
어거스틴은 말년에 있었던 일 - 375년 훈족이 고트족을 서방으로 압박
378 로마 물리치고 블란서로 진격
410년 고트족 장군이 로마를 점
사물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신을 순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나는 나다"(출애 3,14)라는 신명에서 신의 본래적 이름을 보았고 이로써 신을 `존재 자체`로 표시하는 중세적 전통을 확립했다.
Ⅱ. 아우구스티누스(성어거스틴)의 이력
Ⅰ. 서론
성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적 플라톤이라고 한다. 그는 철학을 탐구로서 개념한다. 방법은 진리를 찾기 위한 계속적인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진리에 도달한 다음에는 더욱 심화한다. 왜냐면 진리는 결코 결정적이거나 결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의 저술들은 온통 고백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함으로써 비로소 의로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의의 추구와 하나님 나라의 추구를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헤르만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을 그 시대의 경건한 유대인과 다르게 이해했다. 메시야 희망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피안으로부터 오는 것이긴
안에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고대와 중세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고대의 위대한 마지막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사상가이기도 하다. 성아우구스티누스는 교부사상과 그 체계의 도달점으로 제시된다. 성아우구스티누스 당시에 이단자들과의 논쟁에서 체계화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