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헤르만 군켈의 신학
헤르만은 한편으로는 칸트학파의 일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슐라이어마허의 제자였다. 그에 따르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로부터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
신학 교수 게리쉬는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린다 할지라도, 슐라이에르마허는 우리가 항상 신학적 입장을 확인해야 할 몇 안되는 기독교 사상의 거장들, 즉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그리고 칼빈의 대열에 속한다" 고 주장했다. 반면, 신정통주의자들은 슐라이에르마러가 루터와 칼빈으로 소급되는 상
Ⅰ. 서론
루터와 칼빈 이래 개신교에는 칼 바르트 만큼 중요한 신학자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한 시대에 몇 명 있는, 즉 그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며, 그들의 대적자들조차도 단지 그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한 시기의 획을 긋는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개혁교회들은 바르트의 메시지로 인
신학은 변두리로 밀려 나간 초라한 학문이 되고 만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1951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학업을 계속했는데, 여기에는 정통적 루터파 신학자들인 페터 브루터(Peter Brunner)와 에드문트 쉴링크(Edmund Schlink)가 있었고, 한스 폰 캄펜하우젠(Hans von Compenhausen)과 게르하르트 폰 라드(Gerhard von Rad)
I. 종교개혁의 배경
1. 중세 사회 구조의 변화
루터가 활동을 시작하던 16세기의 유럽은 새롭게 등장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확대되고, 봉건 영주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던 농부와 기사 계급들은 새롭게 형성되는 시민 사회로 편입되어 가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사회질서와 신분의 조건들은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