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 들어와선 만당을 극복하고 조선적인 당풍과 새로운 송시가 등장하였다가, 17세기 후반엔 조선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풍이 개진되어 18세기에 이르러 조선시가 등장하게 된다.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조선후기의 시풍은 조선풍의 시, 악부류의 시, 여항한시 등으
조선전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한편, 박수천 선생님께서는 조선시대 한문학을 조선전기ㆍ중기ㆍ후기ㆍ말기로 나누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셨다. 우리 조는 이 세 가지 방법 중 두 번째 방법을 수용하여 본문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조선시대 한시의 역사적 전개와 발전을 조
한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삼국시대 말기는 바로 육조말기와 육조의 시풍을 이은 초당 연간이다. 앞서 살폈듯이 한자는 보급되었지만 한시가 전혀 창작되지 않다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 한시작품이 보이는 것은 바로 한시가 미미하지만 음악으로서의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 동
대한 관심을 촉진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자극한 것이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린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나 조선의 문장을 강조한 박지원(朴趾源, 1737 ∼1805)의 '조선풍' 등이 그 예이다.
둘째, 18세기 후반은 병조호란 후 '적국'으로 설정되어 1세기 이상 '복수'의 대상
나오기 시작하는 데 실학의 거목인 박지원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한문학이 〈허생전〉·〈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위선을 지적하는 세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해 내고 있다. 이 장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