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도 고려 중기 이래 종래의 속군현에 설치했던 監務가 계속 파견되면서 속현의 주현화 진행 - 감무의 설치는 현종 9년(1018) 군현제 개혁 때 주읍에 배속되어 있던 속군현을 대상, 조선 태종조까지 계속
◇공양왕대에 36현, 선초의 태조정종태종대에 18현에 신설한 감무 - 국가는 중앙집권체제
속현은 374개나 되었다. 이들 속현들은 수령이 설치된 주현에 예속되어 중앙의 간접지배를 받는 행정조직을 이루었다. 즉, 중앙정부에서 여러 군현 중 외관이 파견된 주현에 직첩하는 행정체계를 이루고, 이들 주현이 속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현의 수가 많아 이를 일률적으로 통제하기가 곤란
속현으로 구분되었다. 전국의 500여 개 의 군현 가운데 지방관이 파견된 곳은 130여 개 밖에 되지 않아 하나의 주현이 여러 개의 속현과 부곡지역을 관할하였다. 이 때문에 지방관인 수령은 향리에게 속현과 부곡을 일임시킬 수 밖에 없어 지방사회에서 향리의 권한이 비대하였다.
고려시대 부곡지역은
3. 기다리며 바라는 마음―望夫石
“정읍(井邑)은 전주(全州)의 속현(屬縣)이다. 그 고을의 사람이 행상을 하였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처가 산의 바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다가 남편이 밤길에 해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진흙탕의 수렁을 비유하여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를
Ⅰ. 고전문학 - 정읍사
관련 설화는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 가사는 <악학궤범>에 실려 전한다. 전주 속현 정읍의 한 상인의 처가 장사 나간 남편을 걱정하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정읍사`는 백제의 노래로 보기도 하고, 고려의 노래로 보기도 한다. 기록을 믿으면 백제의 노래가 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