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라고 하였다.
순자서는 <논어>나 <맹자>의 체재와 달리, 각 편마다 한 가지의 주제를 갖고 있는데 대체로 편명과 주제가 일치한다. 현행본 <논어>는 처음 <학이(學而)>에서 시작하여 <요왈(堯曰)>편으로 끝난다. <순자>는 이 체재를 그대로 모방하여 <권학(權學)>에서 시작하여 <요문(堯問)>편으로 끝
순자의 공로는 여러 유가 경전에 대한 폭넓은 연구이다. 순자는 서로 해치고 죽이는 그 시대의 어지러운 정치와 그 밑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통감한 나머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성악설을 비롯해 예의와 형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혼란 속에서는 어짊과 의로움 같은 덕이 발붙일 곳이
순자[성은 순(荀), 이름은 황(況)] 는 50세쯤에 처음으로 대국인 제나라에 유학했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유학하기 이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가 않고 있으나, 태어나서 50년 가까이를 살아온 조나라의 정치나 문화가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
순자[성은 순(荀), 이름은 황(況)] 는 50세쯤에 처음으로 대국인 제나라에 유학했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유학하기 이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가 않고 있으나, 태어나서 50년 가까이를 살아온 조나라의 정치나 문화가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당
순자는 이와 상반되는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생전에 그는 관리였으며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최근 천 년 간에 있어서 유교 사상가들 가운데에서, 그는 별로 호감을 사지 못했다.
순자를 높이 존경하지 않게 된 이유로 근세 정통유교의 위대한 중재자인 12세기 사람 주희(朱熹)가 맹자의 성선설(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