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 비판』에 개진하였다. 이처럼 자연대상의 몰형식성과 관련하고 순수한 만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숭고는 여전히 미학적판단의 지반에 서있다.
또한 Alison은 자연 형식과 무관하기 때문에 숭고의 경우, 판단력이 자기 자율성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Kant는 ‘판단력의 사용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표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숭고의 개념이 이념과 갖는 연관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숭고가 미와 더불어 “미적 판단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칸트 자신에 의해 미적 판단력에 의한 판정임이 주장되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숭고의 감정은 실천이성 이념에 합목적
그의 숭고론을 오늘날의 예술에 적용하려는 미학적 시도들이 의미를 획득해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한 그 같은 많은 시도들은 마치 칸트가 숭고의 개념을 자기 철학의 한 “부록”으로 수용했듯 그의 숭고론을 자신들의 이론적 기획을 위해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데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대상 속에서의 어떤 속정들이 미를 결정하는가를 조사하는 것을 중심과제로 삼았다면, 이제는 미적 경험을 하는 주관의 정신 속에 있는 어떤 속성들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랜 기간 사장되다시피 했던 숭고의 논의가 미학의 영역에 재등장하게 된다. 이는 주관미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原始German 민족은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수세기전에 Scandinavia와 북부 獨逸의 어딘가에 정착하여 살았으며 Rome帝國 시기에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여 주로 Celt語에 손해를 입혔다. 이들은 기원 1-2세기에 동쪽으로는 예전의 Balts와 Slavic 지역으로, 그리고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