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충격을 주었다. 4․19혁명을 찬양하는 시 「아사녀」를 쓰고 7월에는 『학생혁명시집』을 간행하였다. 당시 4․19에서 5․16으로의 반전은 시인들에게 희망에서 절망으로 심정 변화를 유도했고, 또 다른 좌절을 맛보게 하였다. 따라서 그 고통을 정신 지향적 자세로 넘어서야 했었다. 이
시인은 ‘여자의 삶’에서 되살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보았지
송홧가루 날리는데, 들과 산
허연 결레쪽처럼 널리어
나무뿌리 풀뿌리 뜯으며
젊은 날을 보내던
엄마여,
누나여,
<여자의 삶> 중 36연
1938년 신동엽은 ‘부여 공립 진죠 소학교’ 에 입학한다. 이때 소핵교란 지금의 초등학교
신동엽은 2대 독자로 태어났다. 시인의 모친은 신동엽을 낳은 뒤로도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지만 모두 딸이었고, 그 중 위로 셋은 일찍 죽고 만다. 아이가 태어나 성년이 될 때까지 생존하기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던 데다가 아들로는 그 하나였기 때문에 그의 부모가 신동엽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드높이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일체의 정신적, 사회적 억압과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문학과 작가의 임무이자 책임이라는 참여문학의 사상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 시의 직설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이 현실 참여적인 시라는 것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더 나아가 우
라야마 야키치,
신동엽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태어난 공간과 시기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시인신동엽이 바로 그러하다. 그가 부여에서 태어나고 193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실은 그의 삶에 결정적인 동기를 준다. 그가 태어난 해는 만주사변 1년 전이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