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동북아시아에서의 보편성(普遍性)은 당나라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정책이 일조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빈공과(賓貢科)라는 시험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송(宋)나라에 이르기까지(고려 전기 중세전기 2기 문학)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전승되었다.② 집단적인 서사적 문학에서 점차 개인적인 서정적 문학으로 정착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③ 구지가(서사시), 공무도하가(곡조명 : 공후인), 정읍사(백제의 유일한 가요, 신라의 치술령곡이나 백제의 선운산가와 내용상 유사함), 황조가, 해가(구지가의 아류작) 등이 있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사상(佛敎思想)과 유교사상(儒敎思想)이 기반이 되 었다.- 종합 예술: 음악, 무용, 시가의 집단 가무(集團歌舞)
㉡ 구비 전승(口碑傳承=口碑文學=口傳文學=流動文學)됨.- 한자 수입후 정착됨
㉢ 향가의 발생- 정형시(定型試), 서정시(抒情詩), 불교적(佛敎的)
㉣ 서사문학
가요의 발생
가락국 시조 신화에 삽입된 ‘구지가’는 집단적인 서사문학의 시기에 불리던 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무도하가’, ‘황조가’는 개인적 서정 문학으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작품이다. 전자는 물에 빠져 버린 임을 애달파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담았다면 후자는 떠나 버린 임에 대한
가나 부족단위의 공동제의에서 부르던 본풀이류의 무가, ②마을 단위 혹은 가정단위의 무속신앙에서 불려지던 소규모의 무가, ③개인적 차원의 즐거움이나 감정발산을 위주로 하던 비작위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노래ꡓ 등이 그것들이다. ①은 현재 신화의 형태로 잔존해 있거나 서사문학으로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