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닌의 중국 기행 기록들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당시 신라인들의 삶과 중국과의 교류를 짐작해 보도록 하겠다.
2. 신라인들의 중국 여행
신라와 중국을 오갔던 사람들은 주로 공식사절단들과 불교와 유교를 공부하기 위한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사들이기 위한 무역 상인들도
신라배
엔닌을 비롯하여 일본의 많은 견당사들
신라의 배를 이용해 당나라로 감
일본정부가 보유할정도로 튼튼함
고려가 해상 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고려 선박 2척이 발굴돼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사료상에 나타난 고려는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이슬람 국가와의 활발한 해상무역을 통해
무역을 통하여 크게 성장한 장보고세력이 가장 좋아할 근거가 될 수 있는 지역이었다. 특히 산동반도는 고구려 유민 이정기 일가의 번진이 55년간이나 군림했던 매우 이질적인 곳이다.
골품체제에 의하여 억눌려 있던 신라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모여들 수 있었던 최상의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
신라의 淸海鎭大使 장보고는 사실상 최초로 동양세계의 해상권을 지배한 막강한 해군력을 과시하였고, 최근 세계적으로 눈부시게 뻗어나는 우리나라의 해운산업과 국제무역을 맨 처음 개척하였다. 이는 천 년 전에 이루어진 대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장보고는 진작부터 우리 역사상 특기할 만한 경이
당나라로 건너가게 된다. 당시 신라는 골품제도로 혈통에 의해서 모든 정치적사회적 활동이 제약을 받는 사회였다. 반면, 당나라는 세계 각국의 유학생과 무역상인들을 받아들여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게 한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나라였다. 장보고는 그곳에서 당나라 무령군에 입대하여 무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