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전통의 구사에 대한 탄복을 마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의 견해 차이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와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일종의 자의성(自意性)과 주관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계시라는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개념에만 매달리게 될 때 신학은 변두리로 밀려 나간 초라한
신학은 새로운 지평에로 옮겨지고 있다. 곧 역사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이 신학의 새로운 지평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역사라는 지평은 다른 지평을 통합할 만큼 보다 넓은 지평이며 또한 성서적 계시가 발생한 원래의 지평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언어 형태로 주어진 이
1. 역사(의) 신학의 등장
역사신학은 어느 날 뚜렷하게 탁 나온 것이 아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들면서 사람들이 “역사는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며 역사를 중시하지 않고, 철학 중심의 시대가 되었는데, 신학도 이러한 풍토로 되면서 계몽주의 운동이 근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회
랑과 권세가 무력해지고, 겸허하게 무릎을 꿇고, 이 속죄의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에 있어서 인간의 자율적 이성에 의거해서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역사 비판적 시도는 좌절되고, 성령론적 착상, 곧 하나님의 계시를 경청하면서, 수납하면서 신뢰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