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주자학의 비교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토대가 되고 지대한 학문적 영향을 끼친 사조가 양명학이었던 것과 달리 유독 조선에서는 양명학이 기를 펴지 못했다. 그만큼 조선의 주자학적인 학문 풍토가 폐쇄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명학의 전래
주희의 격물학(格物學)에 의거하여 천리(天理)를 구명하는 궁리(窮理)공부를 하였다. 주희는 모든 사물에는 겉, 속, 상세함, 거침이 있으며, 또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理)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왕수인도 친구와 함께 뜰 앞에 있는 대나무를 마주보면서 깊이 탐구하였다. 그
01 주자
주자 [朱子] (1130~1200)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자학 집대성
우주론적. 인간론적 형이상학 수립
이기론(理氣論), 성즉리(性卽理),
선지후행 (先知後行) 등을 주장
★ 분서갱유란 ?
진나라의 승상인 이사(李斯)가 주장한 탄압책으로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불태우고 유학
주희(朱熹:朱子)가 집성(集成)․정리하여 철학의 체계를 세운 것이 성리학으로, 일명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육상산(陸象山)은 ꡐ심즉리(心卽理)ꡑ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왕양명(王陽明)이 계승하여 육왕학(陸王學)을 정립, 이것 역시 성리학이라 하나 대개의 경우
양명학
-중국 명나라 중기에 태어난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 이룩한 신유가철학(新儒家哲學).
중국 송나라 때 주자(朱子)에 의해 확립된 성리학(性理學)의 사상에 반대하여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학문이다. 성리학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