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역사학의 성립
근대역사학이란 전통사학으로 대표되던 기존의 중세사학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착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통사학의 성격이나 범주를 벗어나 역사학의 독립적 위상을 확립하였을 때 가능할 것이므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한국
한국사의 체계화를 꾀함으로써 초창기 근대역사학의 성립에 기여한바 적지 않다. 그런데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그의 업적에 대한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황의돈의 생애와 활동, 주요저작 등을 통해 그의 역사인식, 해원사학의 성격과
근대화론이 민족 모순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편향적인 시각을 지녔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따르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개발을 통한 수탈을 말하면서도 수탈과 차별의 측면은 무시하고 개발과 성장의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또한 한국인이 지식‧기술‧관리 등의 능력을 축적해서 근대민족으로
근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역사서술을 통하여 민족혼을 되살리고자 하였던 점은 양자에 공통된 것이었으며, 그들의 민족주의사관은 관념적 성격이 강하였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역사학과 역사관을 토대로 그들의 민족주의사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한국근대
성격론, 정체성론을 그 골자로 하는 것으로,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미개한 한국의 역사적 구원자인 양 자처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한국역사학계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우리 역사학은 충군 애국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주권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 민족주의 노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