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근대식 기술을 배우기 위한 정책을 세워 영선사(領選使)와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파견하였다. 영선사는 무기제조기술을 배워오기 위해 청국에 파견하였고, 신사유람단은 시찰을 목적으로 일본에 보냈다. 이 글에서는 당시 파견됐던 영선사와 신사유람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영선사(領選使)를 보내어 무기 의 제조, 근대적 자연과학,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한편, 일본에는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명치유신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던 근대적 문물을 시찰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책에는 당연히 근대적 문물에 대한 지식 이 있는 인사들이 필요하였으므로 개화파들
.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한『1894년농민전쟁』1˜5(역사비평사, 1988˜1995)는 농민전쟁의 배경?전개?귀결을 경제?정치?사상 등의 제분야에 걸쳐 종합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공적인 대기획물이다. 이 기획에 참가한
4) 내재적 발전론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이 얼마든지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으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할 당시 조선을 점령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청,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이었다. 그런데 청은 쇠퇴하고 자국마저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