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의 《고풍(古風)》 59수에 이르는 장대한 오언시 연작의 선구가 되었다.
그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이나 권력에 대한 반항을 읊은 몇 편의 작품 외에, 원초적인 노장 사상을 추구하는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영회》외에도 《달장론》,《통역론》 등이 있다.
보충시
詠懷 (其十七)
본관 황려(黃驪:驪興). 자 춘경(春卿). 호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초명 인저(仁氐). 시호 문순(文順).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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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요 문인이며 정치가인 이규보는 1168년(고려 의종22년) 12월 16일 호부낭중을 지낸 이윤수와 김중권의 딸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춘경(春卿), 처음의 이름은 인저(仁低이)고 본관은 황려(黃驢, 지금의 여주)이다. 이규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석 달이 되었을 때 얼굴에 부스럼이 온통 번졌는데,
지식인이 겪는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지식인인 남편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무지한 아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써 남편의 내면세계에서의 갈등의 세부적인 모습보다는 아내가 바라보는 남편의 고통스런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2) 염상섭
염상섭은 일본에 유학, 1919년
내면에 대한 시적 탐구 등이 이뤄졌다. 1930년대의 시가 보여준 새로운 변화는 전대의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시적 감수성과 관습의 변화에서부터 비롯한다. 이것은 『시문학』과 같은 시 창작 동인 활동이 보여준 시의 순수 지향에서 잘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시적 기법의 실험과 주지적 태도, 주관적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