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방 직후 문단의 좌우 대립. 위의 책, 275~279쪽.
해방의 형식이 쟁취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선물처럼 얻어진 것이었기에 독립국가 건설의 과정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해방기는 좌∙우익의 정치 집단이 미∙소 양대 진영의 세력권 내로 편입되고 그들의 전체주의적 팽창 정책에
Ⅱ. 本論
1. 文壇의 狀況
1)政府樹立 전의 문단 상황
左翼系列
①朝鮮文學建設本部 - 1945년 8월 16일, 感激의 하루가 지난 후 종로 한청빌딩에 자리잡고 있던 朝鮮文人報國會의 간판이 내려졌다. 일제 침략 세력에 함께 同調해 온 조선문인보국회는 많은 문인들의 이름 앞에 친일 문학이라는 烙印을 남
문단에서는 식민지시대 문학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문학의 건설이라는 두 가지의 과제가 제기된다. 일제 잔재의 숙청 작업의 구체적인 과제로서 해방 직후의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던 것은 국어의 정화 작업과 친일 또는 부일협력자에 대한 처단이었다.
2. 해방직후의 문단 - 좌우익의 대립
해방
5. 문단 좌ㆍ우익의 대립
문인들에게 해방은 엄청난 혼란을 몰고 왔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작가들은 해방 뒤 하나둘씩 서울로 모여들었다. 해방 직후 일제 강점기 내내 문인들의 억눌린 감정이 분출된 가장 큰 통로는 단체와 조직의 결성이었다. 간판과 결성 취지는 달라도 이
(2) 인간성 옹호와 순수문학 논의
기성과 신인 사이에 벌어진 순수문학논쟁의 계기가 된 글은 유진오의 「‘순수’에의 지향」 『문장』제5호, 1939년 6월
이다. 이글에서 유진오는 신인작가들에게 순수문학적 태도를 지닐 것을 요청하며 ‘순수란, 문단정치에 대한 관심과 책략에서 벗어나, 인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