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나 능력이 위험에 처할 때에는 인간으로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또한, 평화는 물질적 측면만큼이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며 따라서 평화의 개념은 대체로 정의의 개념과 함께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신약에서의 평화는 구약에서 평화에 더하여 수평적으로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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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부산, 마산지역의 시민봉기가 일어났다. 1979년 9월 4일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의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가 '이 어두운 역사의 조타수가 되지 못한다면'이라는 제목의 선언서를 발표했고(같은 책: 324-5) 10월 15일에는 '부산대학교 민주학생 일동'의 이름으로 '노예의 길이냐?
언표되는 민족의 발견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기능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그 중심에는 무교회주의와 관련된 《성서조선》지의 김교신, 함석헌 등이 있었다. 무교회란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도이며 조직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
역사의 자체 전승을 이루어 가는 전승 주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전해진 것이며, 알렌의 입국을 선교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교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평양 대부흥 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먼저 백낙준에 의해 이루어졌다. 백낙준
운동을 펼쳐가면서 독자세력을 구축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들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시기, 상당수 다른 나라들도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다. 이 중 무장 투쟁을 통해 성공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