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표되는 민족의 발견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기능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그 중심에는 무교회주의와 관련된 《성서조선》지의 김교신, 함석헌 등이 있었다. 무교회란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도이며 조직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상과 깊은 친분을 가짐. 「안해」를 『사해공론(四海公 論)』 12월호에 발표하여 문단의 찬사를 받음
1936년 28세 1월부터 8월까지 9편의 소설과 4편의 수필을 발표.
단편 「심청」 『중앙』 1월호, 「봄과 따라지」 『신인문학』 1월호, 「가 을」 『사해공론』 1월호,
시대와 문학 개관
원시,고대는 우리 선조가 한반도 및 만주 대륙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아득한 옛날부터 왕권 중심의 국가 체제가 정비되던 때까지를 가리킨다. 당시의 지배적인 문학 형태는 ‘구비 문학’으로 공동체적인 제의(祭義)를 행하는 가운데 춤이나 음악과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며
이상으로 삼아 그것을 향해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해서 그 확신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채만식은 뚜렷한 것을 독자들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2. 이상 혹은 자아의 파산
이상은 태도의 희극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극한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 식민지 시대의 유일
채만식(蔡萬植, 1902~1950) : 식민지 현실에의 우회공격
1930년대 초기에는 동반자자적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적 지위를 확보했다. 30년대 중반부터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식민지 현실과 그 현실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인간들을 풍자적인 작품을 통해 우회공격하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풍자의 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