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부흥운동도 일종의 사경회였던 기도회에서 발흥했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역시 그해 1월에 열린 평안남도도사경회 동안에 일어났다. 1890년부터 사경회가 널리 시행되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각성이 서북지역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개혁주의 역사가 조지 말스든(George M. Mars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동 등 세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교회에 일어난 이 세 차례의 부흥운동은 한국 교회의 놀라운 교세 신장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사를 특징짓는 중요
원산에 있던 선교부에 선교를 중단 시켰다. 후에 클락은 러일전쟁이 한국 교회에 미친 심각한 폐해를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 기간 동안 교회의 사역은 어려움을 당하였다. 여러 나라의 공사들은때때로 선교사들의 국내 순회를 금하였으므로 교회들에 대한 심방은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현지인
대부흥운동이 전개된 지 정확히 100주년을 맞은 2007년. 과연 100년 전 성령께서 이 땅에 이루셨던 부흥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21세기를 맞이한 교회는 과연 어떤 전략을 가지고 이 시대를 복음화 할 것인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2] 평양 대부흥운동의 발단과정
1903년 8월 24일 함경남도 원산의 미 남감리교 선교지부가 있던 원산교회. 중국에서 선교하던 하이트 선교사가 한국에 온 것을 기념해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에는 미 남감리회 여선교사 캐롤 노울즈 하운셀,캐나다 장로회 여선교사 매컬리등이 참석했다.이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