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박해 시작.
(Kristallnacht, 혹은 Pogrom)
게토설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짐. 유대인의 법적 권리 상당부분 박탈.
•1939년. 2차대전 발발
4월까지 유대인 재산의 강제 매각 실시.
•1940년. 게토(Ghetto)실시
02 유대인학살 과정
게토(Ghetto)
1940년 11.16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 3m 높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 방식과 인식의 차이를 밝히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책임을 보이는 두 국가에 대하여 주목하였다. 이 두 국가의 전후처리 방식에 대한 차이를 밝히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에 한 몫을 할 것이라 여겨진다.
일본과 독일의 전후 책임 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독일의 유대인학살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독일 국민 전체의 공동책임 문제도 회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등이다
그러나 국제 이해를 위한 교과서 협의회의 부단한 연구와 교류협력, 독일 정부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과거극복 노력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며, 전후 1세대 정치인, 지식인들
독일적 정체성과 모순관계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젊은 층에게서 전독일적 민족의식이 약화되었지만 70-80%의 서독인들이 통일에 대한 바램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동의 역사와 문화적 뿌리들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기억문화들과 동․서독간의 무수한 인적 교류들은 이러한 태도를 진작시켰다.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Ⅱ. 프랑스
1. 나치협력자의 대숙청
배경: 제2차 세계대전(1939∼44)의 발발
1940년에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6월 22일에 독일과 사실상의 항복조약인 휴전협정을 맺었고, 7월 10일에는 비시에 모인 국민의회 의원들이 압도적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