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서울: 까치, 2003, p. 3.
소규모 단위들로 이루어진 유럽의 지형학적 구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탄생하고 발달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으며, 더불어 유럽 분열의 중요한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유럽국가들의 지리적 상황은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가에는 중세의 종교운동에 견줄 수 있는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고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
문화권으로 형성되었다.
게르만 족의 이동 이후 서유럽 세계 형성의 중심이 된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와 제휴하여 성장하면서 로마 교회를 후원하는 세력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은 9세기에 분열하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국의 토대가 되었다. 그 결과 유럽 세계에는 고전문화와 크리스트교에 게
로마시대의 정신적인 의미는 아닐 것이다.
넓은 뜻에서는 시대의 비판을 받고 또 그 가치가 확인되어 하나의 모범으로서 영원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예술품도 가치판단 상 고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로마의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 다른 민족의 예술품이라도 그 문화권에서 모범
로마문화에 계승되어 유럽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건축이나 조각의 초기 양식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오리엔트 미술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형식을 배운 데 지나지 않고, 그 세부적 표현에는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 미술의 특질은 다른 어떤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