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정중부의 난 후 얼마 안 되어서 과거로 발신했거나 최씨 정권 이후에 등용되어 최씨의 문객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신진사인층
2. 죽림고회의 문학
무신란이 일어나자 문벌귀족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도망쳐 살아남았다 해도 경제적인 기반이나 사회적인 특권을 잃었으니 살아가기가
이규보의 독특한 시론을 논리정연하게 서술한 것이다. 시 창작 과정에서 창신(創新)과 신의(信意)를 중시하는 입장에 서서, 시는 뜻을 주로 삼으며 뜻은 氣를 으뜸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요산당외기(堯山堂外記)에 실린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에 대한 평가
신라 진덕여왕의
1. 이규보 (1168~1241)
이규보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자, 문인이었다. 왕정에서의 부패와 무능, 관리들의 방탕함과 관기의 문란, 민의 피폐, 그리고 남부지방에서 10여 년 동안 일어난 농민폭동 등은 이규보의 사회 및 국가의식을 크게 촉발시켰다. 이규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나 13세기 한국문
공통분모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살펴보았다.
『동국이상국집』<동명왕편>의 간행이 꼭 최씨 정권의 유지와 정당성 부여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고려의 중국 편향적인 문학을 비판하고 자주적인 문학을 강조한 이규보의 민족적 주체성은 높게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2. 三國史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삼국사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삼국사기가 지어진 이래로 계속되고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일연의 삼국유사도 삼국사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 사가에 의해서 또 식민사관과 민족주의사관 모두에게서 비판받았지만 비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