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삼에 대한 평가는 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문학통사를 저술한 책에서 그의 이름을 쉽지 보이지 않는다 그 연유는 전반적으로 희극문학 자체에 대한 평가가 부족한 우리 문학적 현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근삼에 대한연구와 평가는 40년이 넘게 희곡창작이라
희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근삼에 의해 새로운 양식의 실험적 희곡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근삼이 시도한 실험적 희곡양식은 서사극인데 이 양식은 이후 한국희곡이 양식의 확대와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고 60년대 이후의 한국 현실변화에 상응하는 희곡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
희곡 《끝없는 실마리》를 미국 캐롤라이나극단에서 첫공연한 후, 1959년 《사상계》에 현대인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단막희곡 《원고지》를 발표함으로써 국내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동쪽을 갈망하는 족속들》(1961),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2)와 같은 단막극과 《위대한 실종》(1962) 등의
연극을 반대하는 우익민족극을 주도했으며, 그해 이해랑과 함께 극단 극예술협회를 조직했다. 1947년 한국무대예술원을 창설하여 초대 원장에 취임했고, 6·25전쟁 때는 은거하며 희곡 창작에 전념했다. 1950~52년 국립극장장, 1958년 국제연극협회 한국본부 위원장, 1959~69년 동국대학교교수, 1962~65년 한국
연극반
학생을 가르치게 됨. 같은 해, <쇠뚝이 놀이>로
한국적 연극에 눈뜨게 된 오태석
1973년 <초분>으로 연극계에 이름을 알림
1984년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창단
2009년 현재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이며,
서울예대 극작과 석좌교수, 국립극장 예술감독 등 의 직위를 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