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올바른 판단
- 선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2. 가풍에서 물려받은 정신
- 충효정신
- 문학에 대한 감수성
-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 불굴의 신념
- 따뜻한 인간애
원칙주의자이순신(李舜臣)
1. 직속상관과의 마찰로 인한 파면과 백의종군
- 강직한 성품
- 철저한 원칙주의
대한 이야기로, 물건을 살 때 간접적으로 항상 납부하는 부가세, 월급을 받거나 통장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 등에 직접적으로 부과하는 직접세 등 국가의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누구의 세금을 확대할 것인가(노동자 VS 자본가)에 대해 장단점을 알려주고 있고, 중반부는 세금납부방식에 따
리더십 틀에 맞춰 조명해보도록 하겠다.
Ⅱ.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
충무공의 휘(諱)는 순신(舜臣)이고 자는 여해(汝諧)며 성은 이씨이고 본은 덕수(德水)인데 충무는 1643년(인조 21년) 공이 순국후 내린 공의 시호(諡號)이다.
공은 1545년 3월 8일(음력) 한성부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
월에야 귀양지로 여기던 함경도 동구비보(董仇非堡)의 권관(權管)으로 부임, 35세 되던 1579년 2월 귀경하여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가 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충청병사의 막하 군관으로 전임되었다. 이듬해 36세가 되던 1580년 (선조 13) 7월에 발포(鉢浦)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되었다. 이 무렵에 좌수사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사후평가
충무공은 1598년(선조31) 11월 18일 밤 10시경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고 난 뒤, 12월 4일에 우의정이 중직되었고, 1604년(선조37년) 10월 조정의 논공으로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고, 풍덕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643년(인조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