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지방 군사제도는 지역 방어, 진지방어 개념으로 요새에 상주병력(常駐兵力)을 배치해 두었다가 전쟁이 나면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도록 하는 진관제(鎭管制)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진관제는 군정(軍政)의 해이로 상주병력이 유명무실해 졌을 뿐 아니라,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하더라고 소규모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상황
2. 전개과정 .................................................................................................4
(1)전투의 전개과정과 당쟁
※임진왜란 중의 당쟁
1)관군, 의병, 명나라 원조군대의 전투진행과정
※당쟁의 지속
※임진왜란 후의 당쟁
3. 결과 .......................................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을 설치, 제조에 올라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선생을 불러 벼슬을 제수 하였으나 선생은 이를 사양하기를 74회나 되니, 임금님이 선생을 신뢰함도 대단하였고 벼슬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